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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21.08.16] 우아한테크코스 - '혼자'가 아닌 '팀'이 되어

by igy95 2024. 1. 8.

기획은 처음이라

나는 항상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개인 단위의 작업을 선호한다. 음악을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하다못해 루터회관에 출근해도 주로 숨어서(?) 공부하는 날이 잦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야 집중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어 프로그래밍은 늘 새롭고 어렵다.

 

그런 나에게 팀 프로젝트는 꽤 쉽지 않은 새로운 도전이다. 아무래도 이 정도 규모의 개발은 처음이다 보니,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으로 팀 매칭을 기다려온 듯하다. 프로젝트 시작 전 세운 목표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열정 있고 성격 맞는 사람들을 만나 프로젝트를 끝까지 잘 마무리 하는 것. 여러 사람과 일을 하며 겪게 되는 갈등 상황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기에 부디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적당한 고민 끝에, 의사소통에는 자신 있으니 웬만하면 중간에서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며 상황을 조율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시작 후 가장 피부로 와 닿은 부분은 정말, 정말로 맞추어야 할 게 많다는 점이다. 컨벤션, 서비스 흐름, 라이브러리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하는 팀원 간 대화의 흐름은 참으로 일정하다.

 

A: "우리 이건 어떻게 할까요?"
B: "그건 이렇게 저렇게 하죠."
A: "그렇게 되면 제 생각에는.."

 

하나의 안건이 끝나면 이야기는 주제만 바뀐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비슷한 부류의 대화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더구나 사람이 6명이니 결정을 내리는 시점은 점점 늦어졌다. 프로젝트의 첫 주는 하루가 다 가도록 의견을 내도 회의가 끝나지 않을 때가 다반사였다.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쉬움을 내비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순조로운 건 아니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적어도 '기획'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는 있었다. 기획은 애매함의 연속이고 출제자의 의도도, 정답도 없는 문제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는 매 순간 완벽한 대안을 찾으려 하기보다 적당한 때에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좀 더 중요해 보인다. 물론 나중에 보면 어떤 결정은 사실 합리적이지 않았다거나 혹은 그 반대일 수 있다. 하지만 저마다의 상상 속에서 계속 논의를 이어나가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작게라도 빠르게 무언가를 만들어야 다음 과정을 위해 물꼬를 트는 작업이 한층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며칠 간의 치열한 논쟁 끝에 나는, 하나의 프로덕트를 단순히 구현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이 경험은 개발자로서 한 단계 높은 도약이었으리라 믿는다.

욕심은 N 분의 1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데모 시연을 위한 프로토타입을 만들던 중,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사이에서 생각하는 기획 의도가 상당히 달라져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생긴 것이다. 서로 추구하는 앱의 핵심 가치가 다르다 보니 그에 따른 기능, 디자인도 통일할 수 없어 개발을 더는 진행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분명히 첫 주에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가 같은 이해도를 공유했다 여겼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게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건 다른 몇몇 팀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회의를 하면서도 다들 최대한 말을 정제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이 조금 올라온 말투는 숨길 수 없었다.

 

거듭되는 회의에 차츰 모두가 지쳐가는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이유는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지, 누가 맞고 틀리고를 가리거나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나는 왜 상대방을 내 진영으로 넘어오게 하는 데만 애를 썼을까? 양보할 건 양보하며 중간의 합의점을 도출하는 방식이 처음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잠깐의 반성 뒤, 다음날 나를 포함한 팀원 4명이 카페에서 만났다. (방역 수칙은 지켰다) 우리는 서운하거나 답답한 감정은 잠깐 치워두고 각자가 원하는 부분을 더 집중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한 명이 가져온 종이 더미에 직접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고, 자주 혼용해왔던 용어도 정리해보니 놀랍게도 우리는 그동안 거의 같은 이야기를 저마다의 표현으로 말하고 있었다. 살짝 허탈하기도 했지만 풀리지 않던 실마리가 한 번에 풀리니 일의 진척도는 빨라져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마 이 시간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여 슬기롭게 헤쳐나가지 못했다면, 우리 팀은 결국 표면적으로만 소통했을 것이고 프로젝트의 퀄리티는 현저히 낮아졌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욕구는 핵심적인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다. 근데 그건 다른 사람도 똑같다.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싶은 여러 욕구를 무시한 채 내 욕구만 앞세울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제껏 그래왔듯, 남은 기간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골고루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마음에 여유 공간을 두려 한다.

천천히, 즐겁게

프로젝트는 미션과 달리 마땅한 커트 라인이 없다. 즉 능력껏 자유롭게 이끌 수 있다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자유로울수록 방황하여 스스로 더욱 옭아맨다. 따라서 이전에 서술한 것처럼 마음에 여유 공간을 두기로 함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현재는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즐겁게 개발하며 지낸다. 소통과 설득을 위한 방법뿐 아니라 AWS 배포, Context API 등 다양한 기술을 시도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프로젝트의 중반이 넘어간 지금은 크게 바라는 건 없다. 가끔은 조급함에 밤잠을 설칠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남들보다 느렸다 한들,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써 하나하나의 삽질과 고생들이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