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앞자리만 바뀐 것 치고는 참 소란스럽게도 올해를 달려왔다. 서른을 앞둔 당시의 나는 이 숫자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지난 10년과는 다른 뭔가 멋진 어른이 되어 있길 바랐다. 이로 인해 플래너에는 각기 다른 맥락의 중장기 목표들이 빼곡했고 대부분의 하루는 이 목표만을 완수하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던 것 같다.
'육각형 인간', '올라운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러 분야에서 평균 이상을 곧잘 수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올해의 내가 성장하는 데 있어 어떠한 지표로 삼았던 단어이기도 하다. 하나에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 게 지금까지의 내 성향과 맞기도 했고 막연히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인 시선으로도 여러모로 이득을 취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이 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하나씩 나열한 뒤, 나의 일상은 주로 이것들에 집중하는 시간들로 채워갔다.
- 커리어
- 외모, 건강
- 자산
- 인간관계 (연애, 가족, 친구 등)
- 일 외에 몰두할 수 있는 취미
초기에 설정한 여러 목표들은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스스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단기간 내 여러 목표가 중첩되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가중될수록 점점 무엇을 위해 이것들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과정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도 성취감보다는 소진감이 더 앞섰다.
일정 시점에 도달했을 때는 그저 손에 들고 있는 일들을 빨리 쳐내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호기롭게 일을 벌여만 놓다가 자가당착에 빠진 꼴이 이해되지 않고 번아웃 비스무리한 감정이 올라오려 할 때쯤에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국엔 모든 일이 여차저차 마무리될 때쯤 절반 정도는 충동적인 마음으로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약 4개월 정도의 쉼을 택했다. 돌아보면 내가 봐도 참 유난이다, 싶긴 하다만 쉼을 택한 그때에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느꼈다. 자세히는, 이전의 내가 내린 선택과 결정들에 대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24년이 한 달여 정도 남은 지금의 내 모습은 올해 초 내가 바랐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려나.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그렇기에 24년에 무언가 이뤄나갔던 순간들과 당시 느낀 점들을 하나씩 적어보며 복기해보려 한다.
블로그 통합
벨로그, 자체 블로그, 노션 등 여러 블로그를 유랑하다가 개발뿐만 아닌 여러 관심사를 한 데 아카이빙 할 수 있는 관리처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니즈만 있었을 뿐 작년까지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해 1월 신년 버프로 어찌어찌 잘 통합할 수 있었다. 확실히 관리처를 통합하고 글을 쌓아가니 계속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내년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작성할 수 있기를 🙏
회사 내 메인 프로젝트 + 협업 경험
작년까지는 어드민 제품을 혼자서만 만들다가 올해는 같은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많은 프로젝트로 넘어와 오랜만에 진한 협업 경험을 했다. 별도의 온보딩 없이 바로 장기간의 일정이 필요한 꽤 큰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행 과정을 즐기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당시 여러 우선순위를 잘 조율하지 못한 채 병렬적으로 일을 끌고 간 게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내년에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는 되도록 지양하고 조직 내에서 더욱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발 쪽에 포커스를 두고 시간을 쓰려고 한다.
외부 리뷰어 활동
매년 기회가 될 때마다 리뷰어, 멘토로서 활동해 왔고 올해도 역시 우아한테크코스, 넥스트 스텝 리뷰어로 참여했다. 리뷰에 대한 리뷰이로부터의 피드백은 거의 비슷하게 오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약간 관성적인 방식으로만 대처했던 것 같다.
장점 - 리뷰 속도 / 정답을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스스로 찾을 수 있게 유도 등
단점 - 관점에 따라서는 애매할 수 있는 피드백 / 코드 외 UX에 대한 리뷰 부재
만약 내년에도 기회가 되어 리뷰어로 참여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단점을 좀 더 보완하여 보다 양질의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2024 서울 마라톤 참가
3월 중순에 있던 마라톤 참여를 위해 약 4~5개월 정도 준비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웨이트 위주로만 운동을 하다가 이걸 기회 삼아 러닝을 처음 시작해 보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 매주 한두 번은 뛰고 있다. 마라톤에 참여했을 때 내 목표는 기록보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달성했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운동은 새로운 도전에 필요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도구라고만 여겼는데, 러닝은 그 자체로도 높은 만족감을 준다. 이렇듯 소소한 행복을 위해서라도 체력 관리는 꾸준히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작곡 공부
개발을 그저 일로써만 하고 있던 때 문득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싶어 작년부터 계속 준비했던 게 작곡 공부였다. 시중의 부트캠프처럼 작곡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개발 공부했던 경험을 발판 삼아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한 온라인 코스를 수강했는데, 그와 동시에 바빠지기 시작해 결국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프로젝트였지만, 이미 본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때는 생각보다 더욱 보수적으로 가용 시간을 확보하고 욕심을 낮춰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아마 내년이 되어도 작곡 공부를 다시 시작하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시간을 덜 들일 수 있는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볼 듯싶다.
첫 아파트 매수
근래 들어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가장 오래 준비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금리 인상기의 초입부터 올해 중순까지 꾸준히 돈을 모으고 손품, 발품, 매매 계약, 잔금 처리까지 혼자서 진행했다. 그 과정을 잊고 싶지 않아 여러 글로 나누어 작성했고 지금은 (얼마 안 되는 방문자 수이지만) 대부분의 블로그 유입이 이 글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 매수가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대출을 갚아가며 여차하면 상급지로 갈아탈 수 있도록 새로운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실 산티아고는 24년도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자아성찰의 이유도 딱히 없었다. 다만 딱 하나, '그냥 해보고 싶어서'였다.
언제부턴가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앞서 그것이 주는 '의미'를 먼저 찾는 습관이 생겼다. 실행해보지도 않고 이전의 경험으로 지레 판단하여 그것의 실효성을 찾지 못하면 단순히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해 버렸다. 그렇게 점점 머리와 발이 무거워진 채 무엇도 하지 않으려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마침 쉬고 있기도 하고 돈도 적당히 있으니 갔다 와야지,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모처럼만에 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약 6주 간의 일정을 마치고 난 현재에는 물론 예상과 다를 것 없는 경험도 있었지만, 역시 해봐야 알게 되는 것도 있었다. 장기간의 일정으로 여행이 또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 무료해지던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그려보았던 시간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다.
25년의 나는
24년의 일들을 작성하며 올해는 참 개발을 멀리하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의 일도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더이상 새로운 동기가 형성되지 않으니 발전에 대한 욕심을 멈춘채 그저 직장인 마인드로 다니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레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를 다른 분야에서 채우려 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니 점점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떨어졌다고 느낀다.
때문에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개발을 좋아하고 더 잘해보려 한다. 내년에는 개발과 관련된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면서 승진이든, 이직이든 본업에서 한 단계 성장해서 25년의 회고 글에서는 개발에서 얻는 만족감이 큰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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