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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21.03.11] 우아한테크코스 -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by igy95 2024. 1. 8.

원래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아마 우아한 테크 코스가 시작하기 일주일 전이었나, 그때의 나는 늘 그랬듯이 새로운 환경을 마주할 준비를 하며 계획과 다짐을 주욱 적어가고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책도 많이 읽고 올해가 끝나갈 때 즈음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해야겠다, 돈은 이 정도는 모아야지...' 따위의 무언가 모호하고도 낙관적인 문장들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2021년의 메인 테마가 될 그곳에서 얻고 싶은 포지션이 떠올랐고 잠깐의 호흡 뒤에 야심 차게 다음의 문장을 아로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 우아한 테크 코스에서 가장 실력 있는 사람

하지만 미션을 수행하는 몇 주 동안 저 목표는 절대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능력적인 문제였을까? 딱히 그렇지는 않다. 다만 크루들을 둘러보니 모두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자신이 키우고 싶은 역량에 따라 뻗고자 하는 방향이 다른데 여기서 그것들을 아우르는 최고가 된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표를 빠르게 수정하기로 했고 개인 면담에서 크게 공감이 되었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싶은 역량'을 바탕으로 희망하는 포지션을 재설정했다.

 

  • 우아한 테크 코스에서 가장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재설정한 목표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에 관한 역량 중 가장 자신 있고 키우고 싶었던 역량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때문에 아직 완전히 답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했던 내용을 이번 회고와 더불어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다.

소통을 잘 한다는 건

말이란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투명한 포장지에 싸서 건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즉,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적당한 정제를 거쳐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말을 들을 때에는 내용보다 뉘앙스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페어와 미션을 마치고 회고를 진행했을 때,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치열한 논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페어의 의견을 빌리자면,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주관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설득을 위한 강경한 표현이 오고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또한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논쟁'이라는 이 단어가 마음 한 켠에 숙제로 자리 잡아 다시금 정리해보고 싶었다. 거듭되는 고민 속에 우연히 답이 될 수도 있는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영상 링크 - 굿피플

 

해당 영상에서 지원자들은 질의에 대한 합리적인 주장을 뒷받침할 여러 가지 근거들을 두루 수집하며 시각화하고, 면접관과 지원자 양측 모두 본인의 논리를 펼치고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동시에 같은 근거(e.g. 관련 법, 실제 사례)를 지속해서 참고한다. 그럼 이제 이 대목을 페어 프로그래밍 상황으로 옮겨 보자.

 

프로그래밍을 하며 수많은 방법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었을 때, 우리가 동시에 느끼는 첫 감정은 '낯섦'일 것이다. 본인에게는 일련의 경험을 거쳐 내재화된 지식들이 상대방에게는 처음 다가오는 관점이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은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의견을 주장하는 쪽조차 그것이 좋았다는 경험만 남아있을 뿐, 왜 좋았는지는 휘발되어버렸을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는 것이다. 뚜렷한 근거 없이 내세운 두 주관이 끝까지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다면, 결국 남는 건 한쪽의 시원치 않은 동의나 상한 감정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치열한 논쟁이란, 포장지를 벗겨 내기보다는 그것을 담고 있는 내용물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추는 쪽이라 말하고 싶다. 현재 가지고 있는 주장에 대해 상대방을 (시각적으로) 납득시킬 만한 근거가 충분한지, 반대로 부족할 때는 정말로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틈틈이 자문해본다면 소통적인 측면에서는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좋은 프로젝트란

개발자가 소통을 중요시하고 효율적인 의사 전달을 위해 여러 방법을 탐색하는 이유는 결국 더 나은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프로젝트란 무엇일까?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꼭 주관적인 시선에서 100점이어야만 좋은 프로젝트라 지칭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기능적 측면에서의 오류는 빠르게 정답을 찾아 해결을 하는 게 맞지만 최적화, UI / UX, 구조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사안은 충분히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때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매 순간 적절히 수용하여 프로젝트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각자 내 프로젝트라는 오너십을 가지고 지속해서 참여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런 흐름이 반복되면 서서히 완성도를 높이며 '좋은 프로젝트'가 되어갈 것이고 바로 이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소프트 스킬이 아닐까.. 내심 짐작해 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남는 건 사람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에 실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늘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상대방에게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지 않다면, 나중에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팀을 꾸리거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바라는 좋은 프로젝트에서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에게는, 지금 당장의 완벽한 작업물을 추구하기보다 미션 종료 후 페어와 헤어지게 될 때 '나중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욱 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나를 지나온 페어에게, 또 앞으로 다가올 나의 페어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