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프롤로그에서 집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향성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집을 사기 위해 실질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내부적인 요인(e.g. 현재의 능력과 미래의 계획)과 외부적인 요인(e.g. 지금이 적절한 매수 시기인지)에 대한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을 사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봐야 하는 항목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내부 요인
1. 가용 자금 (모은 돈 + 대출 가능 한도)
아무리 집을 사기 위한 여러 전략이 있다고 할지언정 기본적으로 집 구매를 위한 자기 자본금은 필요하다. 이러한 자본금은 본인이 모은 돈과 실행하려는 대출의 한도를 계산해서 산출해야 하는데, 일단 보수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기준을 잡았다.
모은 돈 = 내가 가진 모든 돈 (X) / 집 구매를 위해 쓸 수 있는 돈 (O)
나의 전재산이 모두 부동산 구매를 위한 자금으로 들어가 버리면, 자본의 유동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당장의 생활비나 경조사비와 같은 지출부터 다른 자산의 투자까지 모두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남겨둘 현금 비율을 정해두고 집 구매를 위한 추가 자금은 대출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 (단, 대출은 부족한 유동성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대출 한도 = 받을 수 있는 대출의 최대치 (X) /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했을 때 감당 가능한 이자만큼의 대출액 (O)
만약 1~2%의 낮은 금리를 장기 고정 금리로 받았다면 별 걱정 없겠지만, 변동 금리로 받아놓은 대출의 금리가 7~8%(한은의 기준금리 추이를 보았을 때 이 이상 올라가긴 힘들기 때문)까지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감당 가능한 금액인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좋다. 대출의 종류 또한 집 구매 전략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데, 이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서술하겠다.
2. 연저축 가능 금액
최근 2 ~ 3년을 평균으로 내어 1년에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을 산정한다. 나 같은 경우 평소에 가계부를 작성하는 습관이 있어 지난 몇 년 간의 저축액을 금방 구할 수 있었다.
3. 저축력에 변동을 줄 수 있는 변수
2번에서 구한 연저축 가능 금액은 과거를 바탕으로 한 앞으로의 예상 수치일 뿐, 실제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신의 생애 주기에 따라 저축률에 변수를 줄 만한 사건(퇴사, 결혼, 출산, 진학 등)은 무엇이 있을지 그려본 뒤, 그 부분 또한 계획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게 좋다고 본다. (그렇다고 저축률을 올릴만한 변수를 포함하진 말자. 웬만하면 희망회로일 가능성이 크다)
외부 요인 (2024.01 기준)
1. 금리
기억상 2022년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자산이 폭락한 시기였고 그 중심 원인은 미국 연준에서 시행한 기준 금리의 폭등(테이퍼링)에 있었다. 그렇게 약 2년 정도 가파르게 올랐던 금리의 수준은 현시점에서 거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제부터는 금리 인하의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속도와 범위는 알 수 없기에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금리를 동결했으면 했지, 이보다 더 올라갈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유주택자들 중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던지는 대표적인 유형은, 집값의 하락을 못 견디거나 역전세에 대한 유동성이 대비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높아진 금리와 함께 올라간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금리가 이 정도까지 올라갈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1~2% 수준에서 상환액을 계산했을 테고, 5~6%까지 올라온 시점에서는 상환액이 거의 2, 3배 가까이 오르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오게 되어 매물을 던지게 된다.
때문에 아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은행이 정해주는 한도가 아닌 나의 기준에서 적절한 대출 한도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금리를 결정하는 주체
- 금리를 결정하는 이유
- 금리가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
2. 현 시점의 가격
가격 = 통화의 가치 + 수요
모든 상품은 통화의 가치와 수요/공급의 비중을 바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즉, 투자 수요를 제외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통화 가치의 하락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부동산이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가격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월급, 소비재들의 가격은 다 오르는데 자산 가격만 내리길 바라는 것도 조금은 모순된 바람이 아닐까 싶다.
다만 부동산은 다른 소비재와는 다르게 소비자(매수자)의 '구매력'이 중요하다. 집을 구매할 때 오로지 현금으로만 구매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대출 실행을 일으키는데, 이 대출이 어떠한 이유로 막혀버리면 매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매력이 하락하기 때문에 수요가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23년에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타 대출과는 다르게 더 완만한 조건과 파격적인 대출한도를 제공함으로써 매수자의 구매력을 일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23년도 얼어붙어있던 부동산 거래에 숨통을 불어넣었고 잠깐의 가격 반등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특례보금자리론이 중단된 현재 시점에서 부동산 거래는 다시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가격은 하락 혹은 보합 상태이다.
현재 서울, 수도권 기준으로 매매가는 2020년도 말 수준으로 회귀한 상태다. 누군가는 지금도 비싸다,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상승장과는 다르게 매수자 우위 시장이기 때문에 가격 절충을 잘한다면 충분히 안전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가격이 비슷한 2020년과 확연히 다른 부분은 '통화의 가치'이다. 20년도는 상대적으로 돈의 가치가 낮았고 현재는 돈의 가치가 높다. 가치가 높게 측정된 것에서 낮게 측정된 것으로 자산을 돌리는 게 투자의 기본 원칙이라고 한다면, 현재처럼 현금의 가치가 높을 때 열심히 돈을 벌어 자산으로 바꿔나가는 선택이 마냥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3. 수요, 공급에 영향을 줄만한 요인
그 외에 부동산 수요,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만 한 요인이 있다면 한 번씩 관심을 가져보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검토해 보면 좋다. 여기서 유의할 건, 어떠한 요인 하나에 매몰되어 다른 가능성은 검토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를 모아 최종 의사결정의 재료로 삼는다는 식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현재 유의 깊게 보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아파트의 매매가는 연속해서 하락 중이고 전세가는 연속해서 상승 중이다.
- 현재 시행 중인, 앞으로 나올 정책들의 방향은 웬만하면 규제가 아닌 완화 쪽에 가깝다.
- 고금리에 허덕이는 건 가계 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그중 실제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건설 기업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앞으로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23~24년도의 인허가실적, 착공률은 이전에 비해 많이 감소한 상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26년도에는 주택 공급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
정리
나는 지금의 시점을 부동산 하락기 중반 정도로 보고 있다. 급격한 하락은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 집값이 회복할 만한 어느 요인도 시원하게 풀린 건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집을 사는 것을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느낀다. 집값이 회복할 만한 요인이 한 두 개씩 풀릴 때까지 기다리면 심리적 진입 장벽은 낮아질 수 있겠지만, 그때의 가격은 지금의 가격과 동일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기회와 불확실성은 늘 공존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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